저놈의 독수리가 맴을 돌고 있기 때문이다.

2024-12-16

저놈의 독수리, 저놈의 독수리, 저놈의 독수리가 맴을 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제까지는 개울 기슭에서 하더니, 오늘은 징검다리 한가운데 앉아서 하고 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굵은 호두야 많이 떨어져라, 많이 떨어져라, 저도 모를 힘에 이끌려 마구 작대기를 내리치는 것이었다. 그 많던 전답을 다 팔아 버리고, 대대로 살아오던 집마저 남의 손에 넘기더니, 또 악상까지 당하는 걸 보면. 소년은 두 손을 오그려 내밀며, 참, 알도 굵다. 그리고 저, 우리 이번에 제사 지내고 나서 좀 있다 집을 내주게 됐다. 이것만은 소녀가 흉내 내지 못할, 자기 혼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인 것이다. 소녀더러 병이 좀 낫거들랑 이사 가기 전에 한 번 개울가로 나와 달라는 말을 못 해 둔 것이었다. 그 말에는 대꾸도 없이, 아버지는 안고 있는 닭의 무게를 겨냥해 보면서, 이만하면 될까. 어머니가 망태기를 내주며, 벌써 며칠째 걀걀 하고 알 날 자리를 보던데요.

남폿불 밑에서 바느질감을 안고 있던 어머니가, 증손이라곤 계집애 그 애 하나뿐이었지요. 그렇지. 소년은 공연히 열없어, 책보를 집어던지고는 외양간으로 가, 쇠잔등을 한 번 철썩 갈겼다. 호두송이를 맨손으로 깠다가는 옴이 오르기 쉽다는 말 같은 건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런데, 어제까지는 개울 기슭에서 하더니, 오늘은 징검다리 한가운데 앉아서 하고 있다. 소녀는 소년이 개울둑에 앉아 있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냥 날쌔게 물만 움켜 낸다. 소녀와 헤어져 돌아오는 길에, 소년은 혼잣속으로, 소녀가 이사를 간다는 말을 수없이 되뇌어 보았다. 소년은 개울가에서 소녀를 보자 곧 윤 초시네 증손녀 딸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날, 도랑을 건너면서 내가 업힌 일이 있지. 그 때, 네 등에서 옮은 물이다.

소녀의 흰 얼굴이, 분홍 스웨터가, 남색 스커트가, 안고 있는 꽃과 함께 범벅이 된다. 소녀는 소년이 개울둑에 앉아 있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냥 날쌔게 물만 움켜 낸다. 저놈의 독수리, 저놈의 독수리, 저놈의 독수리가 맴을 돌고 있기 때문이다. 소녀더러 병이 좀 낫거들랑 이사 가기 전에 한 번 개울가로 나와 달라는 말을 못 해 둔 것이었다. 송진을 생채기에다 문질러 바르고는 그 달음으로 칡덩굴 있는 데로 내려가, 꽃 많이 달린 몇 줄기를 이빨로 끊어 가지고 올라온다. 얼마 전에 소녀 앞에서 한 번 실수를 했을 뿐, 여태 큰길 가듯이 건너던 징검다리를 오늘은 조심스럽게 건넌다. 손을 잡아 이끌어 올리며, 소년은 제가 꺾어다 줄 것을 잘못했다고 뉘우친다. 소녀의 흰 얼굴이, 분홍 스웨터가, 남색 스커트가, 안고 있는 꽃과 함께 범벅이 된다.

소년은 두 손을 오그려 내밀며, 참, 알도 굵다. 그리고 저, 우리 이번에 제사 지내고 나서 좀 있다 집을 내주게 됐다. 그 많던 전답을 다 팔아 버리고, 대대로 살아오던 집마저 남의 손에 넘기더니, 또 악상까지 당하는 걸 보면. 그 말에는 대꾸도 없이, 아버지는 안고 있는 닭의 무게를 겨냥해 보면서, 이만하면 될까. 어머니가 망태기를 내주며, 벌써 며칠째 걀걀 하고 알 날 자리를 보던데요. 소년은 공연히 열없어, 책보를 집어던지고는 외양간으로 가, 쇠잔등을 한 번 철썩 갈겼다. 소녀더러 병이 좀 낫거들랑 이사 가기 전에 한 번 개울가로 나와 달라는 말을 못 해 둔 것이었다. 소년은 소녀네 가 이사해 오기 전에 벌써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어서, 윤초시 손자가 서울서 사업에 실패해 가지고 고향에 돌아오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소녀더러 병이 좀 낫거들랑 이사 가기 전에 한 번 개울가로 나와 달라는 말을 못 해 둔 것이었다. 그런데, 어제까지는 개울 기슭에서 하더니, 오늘은 징검다리 한가운데 앉아서 하고 있다.

오늘 같은 날은 일찍 집으로 돌아가 집안 일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을 잊어버리기라도 하려는 듯이. 그리고는, 안고 온 꽃묶음 속에서 가지가 꺾이고 꽃이 일그러진 송이를 골라 발 밑에 버린다. 이것만은 소녀가 흉내 내지 못할, 자기 혼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인 것이다. 오늘 같은 날은 일찍 집으로 돌아가 집안 일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을 잊어버리기라도 하려는 듯이. 이튿날, 소년이 학교에서 돌아오니, 아버지가 나들이옷으로 갈아 입고 닭 한 마리를 안고 있었다. 소녀가 걸음을 멈추며, 너, 저 산 너머에 가 본 일 있니. 벌 끝을 가리켰다. 소녀의 흰 얼굴이, 분홍 스웨터가, 남색 스커트가, 안고 있는 꽃과 함께 범벅이 된다. 소녀와 헤어져 돌아오는 길에, 소년은 혼잣속으로, 소녀가 이사를 간다는 말을 수없이 되뇌어 보았다.

소년은 개울가에서 소녀를 보자 곧 윤 초시네 증손녀 딸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어제까지는 개울 기슭에서 하더니, 오늘은 징검다리 한가운데 앉아서 하고 있다. 이튿날, 소년이 학교에서 돌아오니, 아버지가 나들이옷으로 갈아 입고 닭 한 마리를 안고 있었다. 개울가에 이르니, 며칠째 보이지 않던 소녀가 건너편 가에 앉아 물장난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굵은 호두야 많이 떨어져라, 많이 떨어져라, 저도 모를 힘에 이끌려 마구 작대기를 내리치는 것이었다. 글쎄, 죽기 전에 이런 말을 했다지 않아. 자기가 죽거든 자기 입던 옷을 꼭 그대로 입혀서 묻어 달라고. 그 말에는 대꾸도 없이, 아버지는 안고 있는 닭의 무게를 겨냥해 보면서, 이만하면 될까. 어머니가 망태기를 내주며, 벌써 며칠째 걀걀 하고 알 날 자리를 보던데요. 저놈의 독수리, 저놈의 독수리, 저놈의 독수리가 맴을 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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